혹시 그림 한 점이 1,000억 원 넘게 팔린다면 믿어지시나요? 그 주인공이었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89세 생일을 딱 한 달 앞둔 시점이라 더 안타깝더라고요.
저는 이 소식을 듣고 솔직히 한동안 멍했는데요. 호크니는 '살아있는 거장'이라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 언제까지나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제 정말 '20세기와 21세기를 잇던 마지막 거장'이 떠난 거예요.
데이비드 호크니, 수영장을 그린 남자
호크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캘리포니아의 수영장 그림이에요. 1937년 영국 브래드퍼드에서 태어난 그는 1960년대에 LA로 건너가면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거든요.
흐린 영국 하늘 아래 살던 청년에게 캘리포니아의 쨍한 햇살과 파란 수영장은 충격 그 자체였대요.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이에요. 누군가 다이빙한 직후의 물보라만 그린 그림인데, 사람은 없고 첨벙거리는 순간만 남아있죠.
물은 어떤 색도, 어떤 형태도 될 수 있다. 나는 평생 물을 그리는 법을 연구했다.
이런 말을 남길 정도로 그는 물에 진심이었어요. 빛이 통과하고 일렁이는 물을 평면에 담아내는 게 평생의 숙제였던 거죠.
생존 작가 최고가 기록, 1,000억의 그림
2018년에는 미술 시장이 발칵 뒤집히는 일이 있었어요.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수영장과 두 인물)'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9,03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000억 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됐거든요.
당시 기준으로 생존 작가 작품 중 역대 최고가였어요. 살아있는 동안 자기 그림이 1,000억에 팔리는 걸 지켜본 화가, 흔치 않잖아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런 숫자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해요. 기록이 깨지든 말든 매일 아침 일어나서 그림을 그리는 게 전부였던 사람이거든요. 이런 면이 저는 참 멋있더라고요.
80대에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다
호크니가 진짜 대단한 건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도구를 겁내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70대에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80대에도 매일 디지털 드로잉을 이어갔거든요.
코로나 시기에는 프랑스 노르망디 시골집에 머물면서 아이패드로 봄 풍경을 그려 전 세계에 공유했어요. 그때 남긴 메시지가 정말 많은 사람들을 위로했죠.
봄이 오는 것을 그들은 취소할 수 없다는 걸 기억하세요. (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
팬데믹으로 모두가 지쳐있을 때 이 한 문장이 주는 힘이 어마어마했어요. 저도 그 그림들을 보면서 마음이 풀렸던 기억이 나거든요.
한국에서도 뜨거웠던 호크니 사랑
사실 호크니는 한국 미술 팬들에게도 각별한 작가예요.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전시에는 37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렸을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평일에도 줄을 서서 봤다는 후기가 넘쳐났죠.
그 이후로도 라이트룸 전시 같은 미디어아트 형태로 호크니의 작품 세계를 만날 기회가 이어졌어요. 화려한 색감과 따뜻한 시선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사랑받았던 것 같아요.
89년의 삶 동안 그는 단 하루도 '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시력과 청력이 약해져도, 손이 떨려도 끝까지 붓과 펜슬을 놓지 않았고요. 떠나는 순간까지 화가였던 사람, 그게 데이비드 호크니였습니다.
오늘은 그의 수영장 그림 한 점 찾아보면서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거장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파란 물결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일렁일 테니까요.